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쿠오카 일가족 살인사건(2003년) (문단 편집) === 피해자 가족은? === 살해된 M씨 가족은 M씨(만 41세)와 아내 C씨(만 40세), 장남 K군(만 11세), 장녀 H양(만 8세)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이었다. M씨는 1962년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났고 사립 하카타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나카스의 한 클럽에서 일했으며 상경한 후 도쿄 아자부주반 상점가의 고기집에서 경험을 쌓고 1988년에 후쿠오카시 주오구에 한국 요리점을 오픈했는데 이 가게는 유명인들이 자주 찾고 TV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가게였다. 이후 히가시구에도 고기집을 오픈했고 매상도 꽤 좋았다. 아내 C씨도 후쿠오카 출신이었는데 규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4년까지 화장품 회사의 미용부원으로, 후쿠오카 공항의 국제선 터미널에서 근무했다. M씨와 C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교제했으며 1990년 5월에 결혼했으며 K군과 H양이 태어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렦지만 2001년 9월 [[광우병]] 소동이 일어나며 경영하던 두 식당이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M씨는 아내의 친척과 함께 여성의류 판매 회사를 열었지만 매상은 별로였고 히가시구의 고기집을 열기 위해 집을 담보로 빌린 4000만 엔의 빚도 갚아야만 했다. 2003년 3월 부부는 의류 판매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동업하던 친척으로부터 독립해 의류 등을 [[백화점]]에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고 두 달 후에는 지인으로부터 휴면 중이던 회사 'W'를 계승받아 성공적으로 부활시키기도 했다. 여기에 탄력을 받아 C씨가 사장을 맡고 의류 판매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다. 한편 M씨는 식당들이 문을 닫은 후 경제난을 이기지 못해 안 좋은 일에 손을 대기도 했다. 사건 이후 경찰이 M씨의 집을 수색하다가 [[대마초]]를 발견했다. [[대마초]]를 재배해 판매했던 것으로 보인다. M씨 일가는 1994년에서 1996년에 걸쳐 외국계 생명보험회사를 통해, 1999년에는 일본 생명보험회사를 통해 전원이 [[생명보험]]에 들었다. 보험액은 M씨가 1억 2000만 엔, C씨가 2500만 엔, K군과 H양이 각각 2100만 엔으로 총액 1억 8700만 엔이었고 매달 내는 보험료는 14만 엔 정도였다. 덧붙여 M씨 일가는 세 중국인 유학생과 면식이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